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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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 현대 모터스(영어: Jeonbuk Hyundai Motors Football Club)는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대한민국 프로 축구 1부 리그 K리그1의 축구단이다. 애칭은 녹색전사.
2000년대 이후로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전북 현대 모터스는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 K리그1 우승[10] , 2000, 2003, 2005, 2020 FA컵 우승, 2004 슈퍼컵 우승, 2006,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2006, 2016년에는 ACL 우승팀 자격으로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2. 역사
모체라고 볼 수 있는 전북 버팔로가 1994시즌에 K리그에 참가했으나 재정 문제로 시즌 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고, 이후 1994년 12월 현대자동차 지원 아래 독립법인체인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이 창단되었다. 2000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하여 전북 버팔로와는 별개의 구단이라고 규정되어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지 않고 있으며 클럽의 공식적인 연혁 또한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부터 시작되고 있다.
2.1. 호남 최초의 프로축구단 전북 버팔로
1991년 국내 최초로 컨소시엄 형태의 프로 축구단을 표방한 '''전라 진돗개프로축구단'''이 출범을 선언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처음 목표로 잡은 1992년 리그 참가가 너무나도 아쉽게 무산되었고, 1993년 1월 스포츠 용품 업체인 푸마를 끌어들이면서 '''완산 푸마'''[11] 로 구단명을 변경하여 그 해 리그 참가를 노렸으나 구단을 둘러싼 악성 루머, 제 7구단 입단이 예정된 선수들의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곤란을 심하게 겪었다. 이로 인해 황선홍[12] 은 완산에 지명되었지만 이흥실 등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4+4 이적 및 트레이드 합의로 포항 아톰즈에 입단하게 된다. 완산 푸마는 결국 선수 등록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리그 참가를 이듬 해로 연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 월급을 오지게 체불한 사실이 알려졌다.
1993년 11월 메인 스폰서가 교체되며 구단명이 '''제우 엑스터'''로 변경되었고, 1994년 2월 16일 법인 설립과 동시에 다시 구단명을 '''전북 버팔로'''로 변경하며, 같은 해 3월 보배주조[13] 대표인 문수기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창단 승인을 받게 되어 힘겹게 1994년 K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14] 초대 감독은 김기복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2.2. 전북 버팔로의 침몰
하지만 만성적인 자금 부족 문제는 시즌 중에도 선수단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어 훈련장은 커녕 선수단 숙소도 마련하지 못했고, 홈 경기 수입으로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가 하면 담당 기자들이 출장비를 모아 전북 버팔로 선수단의 식사비를 마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구단 선수단에서 전북 버팔로를 돕는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구단주였던 문수기 보배주조 대표는 사비를 4억원이나 들여 구단을 지원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메인 스폰서였던 보배주조 내부에서도 전북 버팔로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결국 1994년 9월 6일 연맹 이사회에서 구단 해체를 전제로 그 해에 한하여 전북 구단의 운영을 맡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즉 이때부터 해체될 때까지 전북 버팔로는 K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연맹 직영 구단이었다.
2.3. 전북 다이노스로 재탄생
1994년 시즌이 끝난 후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인 ㈜현양이 전북 버팔로의 기존 선수들과 계약해 1994년 12월 12일부터 '''전북 다이노스'''라는 새로운 구단으로 출범하게 되었다.[15][16] 이때 전북 버팔로 구단은 직접 인수되지 않고 해체 후 재창단 형식으로 갈곳 없는 선수들만 다이노스에 받아들이는 형식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 팀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노린 결과로 보인다. 당시 전북 다이노스는 ㈜현양이 자본금 10억원을 조성하고 전북 완주군에 상용차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매년 20억원을 후원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그러다 1997년에 메인 스폰서 현대자동차가 구단 운영에 직접 대주주로 참여하기 시작함에 따라 구단 명칭이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바뀌면서 현대자동차 직영 구단으로 변경된다.[17]
2.4. 전북 현대 모터스로 새로운 시작
2000년에 2020년 현재의 구단명인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변경하여,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키게 됐다.
엠블럼 디자인은 부여군 규암면 외리유적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기와 봉황문전에서 참고한 것이다.
'''버팔로와 다이노스, 그리고 지금의 모터스 이야기'''
3. 캐치프레이즈
4. 시즌별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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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대 단장
6. 역대 감독
7. 역대 주장
8. 코칭 스태프 명단
9. 선수 명단
10. 유소년 시스템
전북 유소년은 U-12 보급반 1300명과 육성반 50명, U-15 금산중 40명, U-18 영생고 3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급반은 현 130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주에서 1500여명으로 늘린 뒤 인근 도시인 군산과 익산, 김제, 정읍, 남원 등 점차 전북 도내로 보급반을 확산시키고 유소년 코치들을 직접 파견한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을 축구와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하여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기르고 점차 전북의 팬으로 성장시켜 전북을 한국축구의 메카로 만들어 나갈 구상이다.
전북은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유스 출신 선수로는 권경원(전북|현 상주상무 군입대), 이주용(전북), 장윤호(전북), 김현(제주 유나이티드), 김신(전주시민)이 있다.
11. 닥치고 공격[29]
2005년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전북은 FA컵을 우승하고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역전의 명수''' 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속적으로 공격축구를 지향하며 '''다크호스'''로 불리우던 전북은 2009년 이동국, 에닝요, 루이스를 영입하고 K리그 첫 우승을 하였지만 최강희 감독과 전북이라는 팀의 대명사가 될 K리그 최고의 브랜드는 2011년 미디어데이에서 '''"전북은 올해 닥치고 공격, '닥공'을 하겠다"'''고 말하며 첫 등장했다. 평소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최강희 감독은 '''닥치고 본방사수'''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닥치고 공격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2011년 K리그 두번째 우승과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하였다. 전북은 그야말로 정규리그 30경기에서 67골,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4골, 컵대회 1경기에서 1골, AFC 챔피언스 리그 12경기에서 33골, FA컵 2경기에서 3골로 도합 47경기에서 108골로 경기당 2.29골을 쏟아부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인 '''전북은 '닥공(닥치고 공격)'을 영어로 그대로 옮겨써서 아시아 전역에 소개했다.''' 말레이시아 페탈링자야에서 열린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 교육 세미나'에서 올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아시아 클럽 32개팀을 상대로 닥공 축구와 AFC 챔피언스 리그 준비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AFC가 축구의 브랜드화를 통해 관중 몰이에 앞장선 전북을 모범 사례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일본·호주·중국 등의 구단 직원들은 전북의 모범 사례에 귀를 기울였다. AFC 주관 세미나에서 개별 클럽이 프레젠테이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닥공은 전북이 추구하는 공격 축구, '즉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라는 말처럼 전북의 상징, 그리고 앞으로 전북이 나아가야할 모토가 되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이후 닥공의 성공에 자극받은 K리그 각 구단들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서울의 무공해축구, 울산의 철퇴축구, 포항의 스틸타카, 제주의 방울뱀축구, 광주의 직진축구 등 축구의 브랜드화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K리그를 평정한 최강희 감독이 원치않게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본선에 진출시키고 전북으로의 복귀를 조건으로 수용하였다. 최강희 감독이 없는 전북은 1년 반의 공백기간 동안 두 명의 감독대행[30] 이 수행하였다. 그 사이 전북은 계속 흔들리며 닥공을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2013년 후반기에 최강희 감독은 국가대표감독 계약을 끝 마치고 어느정도 휴식기를 가진 후, 전북으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전북이 수원에게 대패하는 모습을 관전한 최강희 감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전북으로 즉시 복귀하였다. 흔들리던 전북을 최강희 감독이 어느정도 붙잡아가며 무서운 기세로 선두를 추격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리그 3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2014년 K리그 세번째 우승을 하였다. '''후반기 들어 닥공보다는 수비 밸런스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8월과 9월을 기점으로 상대의 극단적인 수비 에 여러모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이자, 승리를 놓치지 않는 실리적인 축구로의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전북은 그 동안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철학을 뒤집고, 결과를 내는 실리를 추구했으며 결과가 좋아지자 점차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0월부터 K리그 최초 8경기 무실점 연승을 기록했고, 리그 종료시에는 실점률은 22점, 득실차로는 39점을 기록했다.
팬들에게는 '''수비 밸런스적인 축구지만 공격적인 본능을 잃지 않고 방패로 상대팀을 후두려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휴식기간 동안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의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과 만나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밸런스 전술에 대해 상의하고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2011년과 같은 파괴적인 닥공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2015년 에두를 영입하며 그 동안 이동국을 중심으로 했던 4-2-3-1 전술에서, 에두와 이동국의 투톱을 중심으로 한 4-4-2 전술로 변화를 시도했다. 최강희 감독은 전반기 내내 지속적으로 투톱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투톱을 가동한 닥공은 미드필더 숫자가 줄어들어 수비에 약점이 생겼지만 최전방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였다.''' K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 투톱의 닥공으로 에두는 11골로 득점 선두를 달렸고, 이동국은 8골로 2위에 올랐다. 리그에서는 1위 선두를 달리며 2위 수원과 승점 10점차로 벌리며 전반기를 마감하였다. 에두와 에닝요가 이적과 계약해지를 하였지만 후반기를 앞둔 여름이적시장에서 루이스와 베라, 이근호를 영입하였다.
동아시안컵 휴식기 이후 재개된 K리그 클래식에서 전북은 5경기에서 5득점 5실점하면서 3승 2패를 거두었다. 상대팀의 선수비 후 역습에 고전하며 공격을 시도하다 공간을 내주고 실점하여 패배하는 경기가 최근 2경기에서 나타나자 최강희 감독은 또 다시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 축구로의 회귀 의사를 나타냈고,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전 감바전을 통해서 수비의 균형을 잡았지만 공격진에서 부족함이 나타났다. 때마침 찾아온 A매치 휴식기에서의 공격진 완성이 전북의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결국 2015년에는 닥공은 아니지만 꾸역꾸역승으로 우승을 차지, K리그 클래식 출범 이후 최초 2연패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6년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경기당 2.1골이라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몰아치며 2006년에 이어 10년만에 다시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해 닥공의 위력을 전 아시아에 알렸다.
12. 팬덤
12.1. 규모와 인기
2010년대 중반 들어 국내에서 가장 화려한 우승 실적을 자랑하면서 여러 스타 플레이어를 모으고 있는 K리그의 리딩 클럽중 하나인 만큼 팬덤의 규모도 비단 연고지인 전주시나 전라북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근 대도시인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퍼져있을 만큼 큰 편이다. 소속 선수들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새로운 팬들이 국가대표 경기를 통해 유입되기도 하며, 외국에서도 팬이 꽤 있어 2020년 들어서는 공식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영어 게시물을 따로 올려주고, 공식 온라인 팬샵은 해외배송도 지원할 정도이다.
평균 관중의 수 또한 리그에서 가장 높은 팀중 하나로, 전북의 서포터즈인 매드 그린 보이즈의 규모도 팀의 인기 상승과 함께 덩달아 커진 상태. 실제로 FC 서울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원정경기를 가질때는 슈퍼매치로 얽힌 수원 삼성 블루윙즈 못지 않을정도로 거대한 원정응원단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말한 전국적으로 퍼진 팬들 중 수도권에 거주하는 팬들도 이때 원정석에 자리하기에 형광색 범벅이 된 S석은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12.2. 매드 그린 보이즈 (MAD GREEN BOYS)
12.3. 온라인 팬 커뮤니티 - 에버그린
13. 영구결번
14.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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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라이벌
15.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의 전통적인 최대 라이벌'''. 최강희 체제 이후 전북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지만 초창기에 워낙 많이 졌기 때문에 역대 전적은 수원이 앞섰으나 최근 동률을 이뤘다.[33]
창단 초창기에는 라이벌이나 더비라 불릴 정도의 수준이 못되었다. 수원이 너무 잘 나갔고 모기업끼리의 대결 구도 도 전북이 아닌 울산 현대와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 그러나 2006년 이후 전북에 수원 출신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사연들이 쌓이고 있다. 당장 최강희 감독부터 수원 코치 출신이고, 수원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좋지 않은 감정이 존재했다.
염기훈은 전북의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으나 2007년에 수원과 물밑 협상을 하다가 발각되어 울산의 정경호와 트레이드되었다. 당시에 배신감을 느낀 전북 팬들은 염기훈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염기훈은 2010년 꿈에도 그리던 수원으로 이적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레 전북 팬들의 분노가 수원 팀 전체로 옮겨갔다.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었으나 J리그 이적으로 팀을 떠났다가 2008년에 전북으로 K리그 복귀했다. 2008년 5월 5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수원 서동현이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스 앞에서 춤을 추어 전북 서포터들을 도발하자, 조재진이 골을 넣은 후 수원 서포터스에게 주먹감자를 날려 전북 팬의 환호와 수원 팬의 야유를 불렀다. 조재진이 수원과 좋지 않게 떠나서 수원 팬들이 상당히 싫어하는데, 골을 먹은 것도 모자라 주먹감자까지 먹은 것. 다음 대결에서 그랑블루는 조재진과 염문설이 있다 결별한 모 여가수의 이름을 구호로 외치고 가수의 노래 등으로도 조재진을 도발했으나 조재진은 그 경기에서 보란 듯이 득점을 올려 5-2로 이기며 복수했다. 이후 전북 서포터스 MGB가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 조재진 응원용 대형 현수막 등을 감바 지지자들에게 넘겨주는 등 전북 팬들의 영구 까바 이권을 받은 선수가 됐고 전북에서 딱 1년만 뛰었지만 은퇴식도 전북에서 치러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재진 문서를 참고 바람.
2008년 여름부터 전북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 외국인 선수 루이스는 원래 수원 차범근 감독이 2008 시즌을 앞두고 루카스 영입이 늦어지자 땜질용으로 영입했다가 6개월 만에 수원에서 방출해버린 선수였다. 그걸 최강희 감독이 눈여겨보다가 임대 복귀한 루이스를 임대 계약을 맺으며 데리고 왔다. 루이스가 전북과 계약을 맺고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한 말이 '수원과의 경기가 언제입니까'라며 복수심을 활활 태웠다. 입단 당시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최강희 감독의 훈련 덕인지 2개월 만에 수원과의 경기에서 1-1 상황에서 역전골 후에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이후 2009년과 2011년 전북의 K리그 우승의 공신이 되었다. 반면 차범근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영입에 성공한 루카스는 6개월 만에 방출크리....
2009년부터 전북에서 뛴 에닝요는 2004년에 수원에서 방출했던 용병으로, 이후 브라질에서 뛰다가 2008년부터 K리그 대구로 리턴했다. 이때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2009년 전북에서 영입하며 전북의 레전드 나아가 K리그 역대급 공격수로 꼽힐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2011년 전북의 주장인 조성환도 원래 수원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이후에 포항으로 이적했으나 이적 과정 중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수원만 만나면 으르렁대던 선수였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영전함에 따라 최강희 감독 눈치만 보던 서정진이 수원으로 이적함으로써 더욱 분위기가 가열된 상황이다. 선수 본인이 이적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초창기 전북은 수원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34]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상황이 바뀌어 전북은 2012년 7월 현재까지 2005년 10월 16일 이후 정규리그 수원 원정 패가 없으며 2008년 5월 이후로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는 등 수원을 상대로 천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덕분에 팀 간 가위바위보 상성이 나온다. 그러나 2013년 서정원이 수원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 기록은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시즌 중반에 국가대표팀 감독 계약을 마치고 휴식 이후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전북이 수원에 4 - 5 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최강희 감독은 조기 복귀를 하였다, 이후 2015년 5월 2일, 전북이 수원을 상대로 2 - 0으로 승리하며 일찌감치 리그 독주체제를 갖추며 최강희 감독과 서정원 감독과의 전적은 4승 1무 2패를 달성하며 또다시 수원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이며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6월 21일 경기에서는 무승부를 하며 승점 차는 7점을 유지했다.
2015년 7월 26일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최강희 감독은 홈에 4만 명의 관중이 오면 춤을 추겠다는 공약을 하며 사실상 1, 2위 팀의 결승전이었다. 전주 성 홈경기에서 초반 두 팀은 기싸움을 벌였으나 수원 산토스에게 선제골을 먹히면서 끌려갔다. 전반전 내내 수원에게 끌려다녔으나 후반전에 전북으로 복귀한 루이스가 투입함에 따라 중원에서의 플레이가 원활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0분대에 들어서 루이스가 동점골을 넣었고, 이재성이 루이스의 어시스트를 받아 역전골을 넣으면서 역전승을 달성하였다.
이 날 경기로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수원의 김호 감독과 단일팀 최다승 153승이라는 타이기록을 함께 가진 수원을 상대로 승리하며 단일팀 최다승 154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K리그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올라섰다. 이 날 최강희 감독은 4만 명의 관중이 다 들어차지 않은 31,192명의 관중들이 들어왔지만 역전승으로 인한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루이스와 함께 승리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 날이 오기까지 전현직 선수들과 팬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까지 왔다고 감사하다면서 팬들에게 큰 절을 했다. 리그에서는 승점 차 10점으로 벌어지며 전북은 독주체제를 굳히게 되었다. [35]
2014/2015 시즌 K리그 클래식 2연속 우승과 2016 아챔 우승, 2017 리그 우승을 거치며 수원의 리그 우승 횟수를 따돌리고 리그 연속 우승 횟수까지도 같아지면서 점점 두 팀 간의 관계는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전북의 2013시즌 중 심판 매수 사건이 2016년 밝혀지자 지난 2년간 연속 2위였던 수원 지지자들이 14~15년의 리그 우승을 박탈하라고 주장하고 전북 원정 당시 충돌 일보 직전 까지 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15.2. FC 서울
'''2010년대 이후 리그 최고의 라이벌.''' 수원이 부침을 거듭하는 사이, 양팀은 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 등을 놓고 자웅을 겨루며 새로운 라이벌리를 불태우고 있다.[37]
전북의 서포터 MGB는 안양 LG 치타스의 연고지 이전에 있어 수원의 당시 그랑블루와 대등할 정도의 강성반대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간혹 서포터 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2006년 이후 전북이 빅 클럽으로 성장하면서 '2004년 팀'의 우승 횟수를 넘어서고 GS 축구단 전체의 우승횟수를 빠르게 추격, 추월하면서 우승권에서 양 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라이벌 의식이 더욱 심화되었다.
아이돌 걸그룹 티아라로 인해 두 팀간에 해프닝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10년 3월 14일, 전북이 원정에 나선 시즌 3라운드, 홈 개막전을 맞아 상암에는 당시 히트곡 Bo Peep Bo Peep으로 큰 인기 누리던 티아라를 초청한다. 여기까지는 뭐랄게 없었는데...
상암 경기장에 전북 유니폼과 같은 형광녹색 옷을 입고 와서는 홈팀을 응원한다는 인사와 함께 공연을 했다. 경기에서도 전북이 후반 막판 심우연의 결승골로 이겼다. 결국 티아라 측은 다음날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식전공연 후 바로 음악방송 스케쥴을 소화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너무 바빠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고. 정말 경기장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 생방송에 출연했다. 이후 전북은 2011년 4월에 수원과의 홈경기 때 티아라를 초청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전북 유니폼을 입고 공연했다.'''
이날 경기를 준비하면서 전북 구단이 만든 포스터는 2010년 상암에서의 사진을 배경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들어 두 팀간의 경기를 티아라 더비라 칭한 일부 팬들이 있지만 대다수 팬들은 그러한 명칭에 대해 유치하다며 거부감 느낀다. 게다가 2012년 이후 티아라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일부에선 티아라의 곡 중 하나인 러비더비를 본따 러비더비라 칭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유치하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15년부터는 전북 팬들 중심으로 라이트 더비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다. 물론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아스날 FC간의 라이벌 매치처럼 적당한 명칭이 없어도 얼마든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16시즌부턴 일부 언론과 해설자들이 양팀의 앞글자를 따와 썰전/전설이란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8월 전북이 홈에서 또 1-0으로 이긴 후 2012년 7월까지 5경기 연속 무승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미있게도 전북이 서울을 상대로 영 맥을 못추는 반면, 서울은 또 수원을 상대로 맥을 못추고, 이런 수원은 또 전북에게 맥을 못춘다(...) 전북 > 수원 > 서울 > 전북. 즉 이런 가위바위보 형태의 상성이 나타났다.
최용수가 주장하는 '3백 바탕의 선수비 후역습'에서 유독 타팀들보다 후역습 상황에서 사단이 나는 터라, 전북은 2013년 최강희 감독 복귀 후에도 전체 성적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최강희 감독은 "우리도 하프라인 아래로 선수들을 다 내릴까 싶다"며 큰 변화없이 밀어부치는 닥공의 변칙적 활용 가능성을 내비치곤 하였다.
2014년 11월 2일 상위스플릿을 시작하는 34라운드, 경기전 대부분 전북이 공격 전략에 변화를 꾀해 서울의 수비벽을 무너뜨리리라 봤다. 그런데 막상 최강희 감독이 내놓은 전략은 예상과 정반대, 방패든 적에게 내민 무기는 똑같은 방패였던 것. 뿐만 아니라 마치 "우리도 수비축구할 수 있다"라는 걸 90분 내내 외치는 듯했다. 공격 걸어오지 않는 전북의 태도에 도리어 서울이 당황해 마지막 순간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전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반 추가시간에 카이오의 통쾌한 극장골로 승리하며 그동안 당해온 것을 되갚고 우승 9부 능선을 넘었다. 최강희 감독은 앞으로 닥공은 서울을 상대한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의 수비축구 할 줄 몰라서 그간 못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양 최씨 감독의 고집과 승부욕이 불꽃을 튀기는 상황.
티아라 사건 5주년인 2015년 3월 14일의 상암 원정에서도 돌아온 에닝요와 에두의 골로 2-1 낙승하였다. 6월 6일 전주 홈경기에서는 2연승하며 재미를 본 수비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이 화근이 되어 1-2로 패배하였다. 하지만 9월 홈경기에서는 시원시원한 역습축구를 시전하여 3대 0 완승을 거둔다.
2016 시즌에는 전주성에서 열린 리그 개막전부터 최종전까지 제대로 치열하게 맞붙었다. 개막전에서는 후반 중반 이재성이 올린 그림같은 코너킥을 이적해온 진격의 거인 김신욱이 헤딩골로 밀어넣었고,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대 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7월 20일 상암에서 3대 2, 8월 28일 역시 상암에서 장윤호의 행운의 선제골, 로페즈가 중원을 지배하고 레오가 시즌 최고로 꼽을 만한 멀티골 쇼를 벌이며 3대 1, 9월 28일 아챔 준결승 1차전에서 영혼까지 털어가며 4대 1로 승리하면서 압도적인 우세를 이어갔다. 10월 19일의 아챔 준결승 2차전에서는 1대2로 패했으나 결승 진출의 성과에 가려 결과 자체는 양팀 모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승점감점 징계로 13년 상황이 다시 도래한 스플릿 최종전이자 리그 38라운드인 11월 6일 박주영의 골로 또다시[38] 전주성에서 우승컵을 원정팀에 넘겨주고 말았다. 황선홍 감독은 경기종료 직후부터 흥분한 기색이 거의 없었으며 인터뷰에서도 매우 차분한 목소리로, 내년에 진짜 제대로 대결해보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건넨 진짜 도전장을 받아들고 지난 시즌보다 더 치열하게 맞붙을줄 알았건만, 2017년 서울은 모든 토너먼트 광탈에 아챔진출까지 실패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전북 지지자들도 이명주 입단 등을 제외하고는 예년보다 관심이 덜했다. 시즌 전적 2승 1무 1패. 18시즌에는 3연승, 그리고 서울은 하위 스플릿으로, K리그/2018년/승강 플레이오프로 갔다. 19시즌에는 3승 1무.
15.3. 울산 현대
양 팀의 모기업이 구 현대그룹에 뿌리를 두고 같은 기업명이 팀 이름이다 보니, 서포터나 팬들 간에 큰 악감정이나 충돌은 없으며 주목도도 별로 높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울산이 압도적으로 역대 성적이 좋았고 중공업그룹 등[39] 모기업의 지원도 좋았기 때문에 비교할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같은 회사인 포스코 내의 형제구단 포항과 전남의 관계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것.
그러나 전북이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그냥 양보하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울산에게 역전승을 일구고, 우승까지 차지한 이후 계속 좋은 성적을 내고 곧이어 리그까지 제패하며 모기업인 자동차그룹으로부터 받는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 반면, 울산은 2012년 아챔 우승을 빼고는 계속 지지부진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언론이나 팬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러다 2019년과 2020년, 양 팀이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며 현대가 더비가 점점 K리그의 주목 받는 더비로 떠오르고 있다.
2008년까지는 전북 선수가 울산으로 가면 울산이 또 우리팀 선수를 데려갔다며 전북 팬들이 우는소리를 하고 다닌 반면, 이제는 많은 울산 팬들이 잘나가는 전북의 상황을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다. 2009년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전북이 울산보다 성적이 좋게 나오고 있으며 2011년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전북이 울산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압도적인 리그 우승으로 별 숫자에서도 울산을 앞서게 되었다.
대략 15시즌까지는 생각보다 사이가 나쁘진 않았다. 물론 형제 관계인 포항과 전남 팬들 사이에는 못 미친다고 보아야 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원정 온 상대 팬들에게 서로 인사 잘해주었고 스스럼없이 인터넷에서 울산을 ‘형님네’라 부르던 전북 팬들이 온라인에서 있었을 정도. 기본적으로 전북은 수원/서울, 울산은 포항이라는 숙적이 있는 만큼 다른 팀에게 악감정 가질 여지가 적었다.
2013년 전후로 서울-수원-포항이 우승보다 팀 재정 안정화를 우선순위에 놓으면서 투자액이 줄었고, 울산은 조민국 체제로 시원하게 14시즌을 말아먹고 윤정환 감독을 영입하며 철퇴 축구의 새로운 부흥을 모색하고 있어 20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양 팀의 대결이 리그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흡사 라 리가처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극심한 우승 경쟁 가능성을 점치는 설레발이 힘을 받았지만, 울산이 시즌 중반기 작년보다 더 심하게 추락하며 양강 구도는 볼 수 없게 되었다.
2016 시즌부터는 김신욱을 중심으로 현대가 더비가 본격 치열해지기 시작하였다. 전북 코칭스태프가 오래전부터 절실히 영입을 원하던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해외 빅 리그가 아닌 한 국내 이적은 없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김신욱이 16시즌을 맞으며 전북에 이적한 것부터 놀라운 뉴스였다. 게다가, 초반의 부진을 씻고 팀 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아챔 우승에 공헌한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울산 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리그 팬과 전북 팬들마저도 일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정 을 거침없이 디스하는 인터뷰를 연달아 한 바 있다.
17시즌에도 양 팀이 리그 스토리의 중심에 서고 있다. 상반기에는 AFC 징계로 무산된 아챔에 울산이 대신 출전하였다. 또한 떠난 윤할의 빈자리를 전북의 레전드 출신인 김도훈이 채웠다. 작년 인천에서의 모습과 우려 섞인 전망을 뒤엎고 김도훈 호는 시즌 중반을 넘기며 2위 자리를 지키며 거세게 전북을 추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18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울산 서포터스가 먼저 `전북을 꼭 이겨달라`라고 도발하는 바람에 양 팀 간의 대결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지만 아직은 전북 지지자들이 신경쓰는 단계에 이르진 못하고 있다. 그리고 파이널라운드(스플릿 라운드) 울산 원정에서 리그 우승 확정.
19시즌에는 역대급[40] 우승 경쟁을 펼치며 진정한 라이벌 양상을 보였다. 37라운드 맞대결 무승부로 자력 우승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맞았지만, 6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있던 포항의 도움을 받아, 이번에도 극적인 역전 우승을 울산에게 빼앗아내며 성남과 최다우승 타이인 7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결말을 이뤄냈다.
20시즌에는 우승을 위해 칼을 갈은 울산이 이적시장에서 조현우, 이청용, 홍철, 윤빛가람 등 스타급 선수들을 싹쓸이 하여 데려왔다. 반면 전북은 김승대, 김진수 등 전력 누수가 많았고 기성용 영입도 불발되는 등 불안 요소가 많았다. 이에 20시즌에는 울산이 전북을 꺾고 우승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시즌 중후반까지 울산이 전북을 앞서나갔으나 결국 전북이 울산과 맞대결 3번을 모두 이긴 게 단초가 되었고, 울산이 파이널 라운드에서 포항에 또 0-4 패배하는 등 사실상 자멸하면서, 다시 한번 전북이 울산을 뿌리치고 4년연속, 통산 8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이어 벌어진 FA컵 결승에서도 2차전에서 울산에 역전승을 거두며 13년 포항에 이어 더블 우승을 거두었다! 20시즌에는 파이널라운드와 FA컵 결승을 거치며 전북의 위닝 멘탈리티와 승리를 위해 원팀으로 뭉치는 끈끈함, 어록을 쏟아내는 모라이스 감독의 인품과 이동국 은퇴식으로 절정을 찍어버리는 구단의 선수단 존중, 이에 화답하는 팬덤 등 전주성의 모든 모습이 울산의 그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다.
15.4. 전남 드래곤즈
전북과 전남은 서로 라이벌이고 싶어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주목도나 인지도도 높지 않은게 현실이지만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악연이 있다.'''
일단 같은 해 창단한 양팀의 '''창단 첫 공식경기'''가 광양에서 열린 양팀 간의 대결이었고 이 경기에서 김도훈을 앞세운 전북이 전남을 깔끔하게 제압했다. 2002년 광양 경기에서는 당시 전남의 신병호가 공을 손으로 건드려 넣은 골이 인정되어 결국 전남이 이겼는데, 그 해 전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팀 서포터들이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신병호 현 제주중학교 감독은 현역 은퇴할 때까지 전주에만 오면 '''손병호'''라는 야유를 들었다. 또 2003 시즌 전에 전남이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마그노를 데려와 계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계약하러 광양에 간 마그노가 '이런 시골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계약을 불발시켰는데 얼마 후 전북에 입단했다. 그 해 양 팀이 붙은 경기에서 양팀 서포터가 충돌하고 경찰이 출동하였으며 한 전남팬은 마그노를 고소하기까지 했다.# 더비 문서에도 나오듯, 당시 전남 지지자들은 '현대 자본'을 운운하며 프런트와 구단까지 싸잡아 비난하였지만 박태준 회장 생전인 이 시기[41] 에 어느 구단에 돈과 좋은 선수가 더 많았는지는 너무 분명(...)하다.
2009년에는 개인적 친분이 깊은 전북 최강희 감독과 전남 박항서 당시 감독의 주도로 매년 정규리그 개막 전에 '''호남더비 정기전'''을 열기로 구단간에 합의하고 전주에서 경기가 열렸다. 그런데 첫 경기부터 과열되어 당시 전남에서 입단테스트 받던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사태로 마무리 되고 그 이후부터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 경기는 전남에 0-1로 졌는데, 부상으로 실려나간 선수는 결국 계약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정성룡을 영입하려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전남으로부터 10억에 영입한 염동균이 2011시즌 중에 전남시절에 가담한 승부조작으로 퇴출되며 전남과의 악연이 짙어지고 있다.
2015년 23경기 무패 기록을 전남이 가로막았다. 1997년 전남이 세운 21경기 무패기록을 깬 팀이 2015년 전북이고, 그 23경기 무패기록 도전을 막은 팀이 전남이라, 더비다운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분위기다.
2016시즌 전북은 전남에서 뛰던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호와 임종은을 영입했다. 둘은 각각 공격과 수비의 핵이었고, 특히 이종호는 2014 아시안게임 대회와 2015 동아시안컵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커리어까지 있어 전북은 최전방 공격에 이어 2선에서의 파괴력까지 한층 강화하게 되었다.
17시즌 이후에는 전남이 ‘잔류 당하는’ 수준의 부진으로 전북 전이라 무언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도 보이지 못하다 결국 18시즌에 강등을 확정하면서 홈팬들의 원정거리가 또 한번 멀어지고 말았다.[42]
15.5. 그 외 K리그 팀들
2010년대 중반 토너먼트 대결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3년에는 FA컵 결승에서 패해 전주성에서 포항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으며 14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 리그 16강, 15년에는 스틸야드에서 열린 FA컵 16강 원정에서 패하고 말았다. 다만 리그에서는 대개 우세이고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대승하는 경기가 많아서인지 호남과 영남, 현대가와 포스코의 라이벌리에 무려 이동국이라는 인물로 얽혀 있음에도, 더비라는 인식이 거의 없는 편이다. 심지어 19시즌에는 극적인 리그 7회 우승에 가장 강력한 도움을 받아, 많은 지지자들이 영일만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상당수 포항 팬들에게도 최영준 완전영입[43] 을 조건으로 우승을 축하받는 진풍경[44] 이 벌어졌다. 앞의 징크스도 포항과 정상자리를 놓고 맞대결을 벌이지 않는 이상, 아예 16년 리그 준우승까지 포함해 황선홍 징크스로 성격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성남 FC와 경쟁관계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14시즌부터 시민구단이 되었지만 돈 많은 시청과 명장 김학범 감독을 필두로 한 코치진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인프라와 선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리그 최고의 별 숫자를 놓고 더비 수준의 치열한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16시즌 중후반 코칭 스탭이 전면 물갈이 되고 또 대행의 대행 놀이 끝에 15시즌 부산보다도 엉망으로 강등 당하였다. 남기일 감독 지휘하에 승격한 19시즌에는 역시 남기일호 특유의 끈적함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남일이 지휘봉을 잡은 20시즌은 11R 2:2무승부 19:시즌 0:2 패배를하며 승점 단 1점밖에 챙기지 못하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아이파크에는 다이노스 시절부터 강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전신인 전북 버팔로가 94시즌에 거둔 5승 중의 3승을 대우 로얄즈에 거두었으며 역대 통산전적도 다른 원년구단들에 비해 좋은 편이다. 사실 정몽규 구단주를 중심으로 현대가 스토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부산이 승격하고 제대로 투자한다면 훨씬 치열한 대결이 될 수도 있다. 2017시즌 후반에는 많은 전북 지지자들이 본의 아니게[45] 울산의 리그 3위와 부산의 FA컵 우승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광주와 함께 20시즌 다시 만난다.
호남의 또 다른 팀인 광주 FC는 확연한 전력차에도 물러서지 않고 시원하게 맞불놓는 공격축구로 강한 인상을 남기다 결국 17시즌 첫 대결에서 통산 첫 승을 따냈다. 전북 지지자들은 인천과 함께 좀처럼 극복이 안되는 상대적인 고전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남기일 전 감독과 나상호, 윤보상 등 유망주들에 대한 평가만큼은 리그 전체와 비슷하거나 더 후한 편이었다. 하지만 광주도 17시즌 일찌감치 강등 확정. 악전고투 끝에 신승한 경기가 많아서인지 가깝게 다니던 원정팀이 사라져 아쉽다는 의견이 거의 없다(...). 20시즌 승격으로 다시 만난다.
2005년 최강희 감독 부임 후 부천 시절을 포함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전주성 홈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가 16시즌 스플릿 첫대결이던 34라운드에서 일격을 당하며 우승 경쟁에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이후 17시즌 제주에만 2연패를 당하며 고전했으나 10월과 11월 대결에서 승리하며 리그 정상에 등극하였다. 이에 스플릿 제도 시행 이후인 2014, 15, 17시즌 제주전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하는 진기록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대전 시티즌은 퍼플 아레나가 일단 전주성에서 가깝기도 하고 최은성 코치를 통해 사연이 얽혀있다. 덕분에 많은 전북 지지자들이 대전의 14시즌 챌린지 우승을 성원 및 축하했고 최 코치의 은퇴식에도 퍼플 크루를 초대하는 등 국내 축구판에서는 사이가 좋다고 볼 수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전의 재강등 후 챌린지에서 보내는 시즌이 길어지면서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얽힐 일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중. 기업팀으로 재탄생한 결과가 주목된다.
부천 FC 1995와는 FA컵에서 두 번 만나 모두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심지어 두 번 모두 홈에서 맞붙었으나 2016시즌은 8강에 머물렀으며 2017시즌은 첫대결인 32강에서 승부차기 패. 공식대결에서 승리가 없는 팀이다보니 베트남 빈즈엉 등과 함께 각종 기적의 논리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15.6.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전북과 광저우는 자국 리그에서의 위상도 서로 비슷한데, 이쯤 되면 보통 인연이 아니다. 리그를 초월한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라이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북 현대와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3년 연속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광저우가 아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난 2012년부터 계속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전북과 광저우의 조별리그 3년간의 만남을 리피 감독은 "미래에도 광저우와 전북은 좋은 라이벌이 될 수 있을 것" 이라며 이야기했다. 다만 2016~2018에는 용케 아챔에서 만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3년간 매치업을 겨룬 양팀 감독들이 모두 다르다. 2012년 전북 감독대행 이흥실 - 광저우 감독 이장수, 2013년 전북 감독대행 파비우 - 광저우 감독 마르첼로 리피, 2014년 전북 감독 최강희 - 광저우 감독 마르첼로 리피. 전북은 2006년의 아시아 챔피언이지만 광저우가 그 사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마르첼로 리피라는 명장 아래에서 유명 외국인 선수와 중국 국가대표를 대거 영입해 기어코 2013 AFC 챔피언스 리그 정상에 올랐다. 양팀의 역대 전적은 2014년 현재 2승[46] 2무 2패로 팽팽하다.
여기에 광저우의 핵심주전인 펑샤오팅과 황보원은 희한하게 전북에서 뛴 경험이 있다. 중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 선수들은 고연봉을 받아서 외국리그로 가는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이들은 그 드문 예들 가운데서 전북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광저우는 중국 팀 가운데서 지한파들을 보유하고 있는 셈. [47]
2012년에는 H조에서 만났다. 양팀은 서로 원정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광저우는 전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전북은 광저우 원정에서 한명이 퇴장당하며 10명이 싸우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3-1로 승리하며 복수했다. 당시 조별리그에서는 광저우 1위, 가시와 레이솔이 2위를 차지했고 전북은 승점 1점 차 3위를 기록해 탈락했다.
2013년에도 F조에서 만났다. 전북과 광저우는 일본의 우라와 레즈, 태국의 무앙통유나이티드와 한 조에 묶였다. 전주에서 1-1, 광저우 원정에서 0-0으로 비겼다. 광저우가 1위, 전북이 2위로 나란히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2014년에도 G조에서 만났다. 광저우 원정에서 광저우가 2골을 넣으면서 무너지는듯 했으나, 전반종료 직전에 이동국의 골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후반에 정인환의 동점골이 이해할 수 없는 중동심판의 판정으로 무효화 되면서 3-1로 패배하였다. 전주성에서는 정혁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는 악조건에서 이재성의 어시스트를 레오나르도가 발리슛으로 선제 결승골을 선사하며 1-0으로 승리했다.
악연의 스토리도 계속된다. 리피 감독은 전주로 원정을 왔을 당시 경기 하루 전 열리는 공식기자회견에 무단불참하는 결례(&심리전)를 범했다. 이후에도 오만한 말로 국내 언론과 축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2013년에는 30년만의 감기로, 2014년에는 경기장과 숙소가 멀다고...
2015년에는 다행히 조별리그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8강 대진에서 전북은 감바 오사카와 맞붙게 되었고, 광저우는 가시와 레이솔과 맞붙게 되어 4강에서 전북과 광저우가 또 다시 4년 연속 만나게 되는 천생연분을 자랑할지 아시아의 축구팬 모두가 기대하였다. 하지만 8강전 감바전 패배로 전북이 4강 문턱을 밟지 못하고 탈락하고 광저우는 대조적으로 2년만에 우승팀으로 복귀하면서, 2015년에는 인연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2016년에는 광저우가 조별예선에서 광탈(...)하고 2015년과 정반대로 전북이 10년만에 우승팀으로 복귀하였다. 맞대결은 없었지만 광저우가 우승한 다음 시즌에 바로 왕좌에 복귀하면서 나름의 인연은 또 생긴 셈. 2017년이야말로 징계로 인하여 전북은 출전권 박탈, 광저우는 8강 탈락으로 인연이 없던 해. 2018년에는 광저우가 8강에서 톈진 취안젠과 두번 비겼지만 원정은 0-0, 홈에서 2-2로 비겨서 어웨이골 룰로 무패(...) 탈락하여 다시 인연이 성사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레알 마드리드와 올랭피크 리옹, 공교롭게도 광저우는 레알과 자매팀이고, 전북은 리옹과 자매팀이다.
16. 스폰서
전북현대의 스폰서 목록
17. 파트너
17.1. 올랭피크 리옹
봉황과 사자의 만남, 2013년 유럽 프랑스 리그앙의 명문, 올랭피크 리옹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현대자동차 스폰서쉽을 계기로 상호협력 체계의 교류를 시작했다. MOU 체결 이후 정기적인 친선 매치(격년제 초청)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육성 시스템과 스카우팅 능력을 갖춘 리옹에 유소년 육성 노하우를 전수 받고있다.
2013년 7월 20일 프랑스 현지에서 친선전을 가졌다.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잡은 리옹은 전반 15분 리산드로 로페즈가 전북의 오프사이트 트랩을 깨고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 6분 김우철의 롱패스를 받은 레오나르도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슈팅을 날려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리옹은 매서운 반격에 나섰고 후반 30분 라카제트가 헤딩골로 다시 리드를 잡으며 2대1로 석패했다.
2014년 5월 21일에 전주에서 리턴매치가 열렸다. 전반 21분 이승기의 헤딩 패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한 한교원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고 전반 44분 이재성의 추가골로 승기를 굳히며 전북이 2대0으로 완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이후, 리옹의 가르드 감독은 "작년에 리옹에서 했던 경기를 돌아봐도 전북과 리옹의 레벨 차이는 없다" 며 이야기했다.'''하이라이트'''
2015년 리그 휴식기에 프랑스 현지에서 친선 매치가 예정 되있다.
2013년 리옹의 19세 이하(U-19)팀 코치 조엘 프레쉐와 U-15팀 장 프랑소와 총괄 디렉터를 초청하여 리옹의 오랜 경험을 통해 갖추어진 체계적 시스템과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또한 전북 유소년팀 전체 코칭 스태프와 분석회의를 통해 컨설팅과 트레이닝 모델을 제시했다.
2014년 전북의 유스시스템에서 성장한 김신이 리옹에 입단했다. 단계적 상호 발전을 위한 양구단 MOU 체결에 의해 유소년 시스템 및 선수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합의를 끝내고 김신이 리옹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면서 임대 이적이 결정됐다.
2015년 올랭피크 리옹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전북 유소년 지도자(U-18, 12)들을 파견했다. 올랭피크 리옹 1군 및 각 연령별(U-10 ~ 19) 훈련세션 참관, 리그앙 경기 관람, 현지 유소년 전문가들과의 교류 및 미팅을 통해 유럽 최고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전수 받았다.
2016년 김신은 올랭피크 리옹에서 복귀해 수비수 옹동균과 함께 충주 험멜로 임대 되었다. 김신 선수는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8~9화에서 경기 후 인터뷰 하는 모습이 나온다.
17.2. 베이징 궈안
녹색동맹, 2013년 12월 중국 슈퍼 리그의 강호, 베이징 궈안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베이징과는 2003년 현대자동차와 양도계약을 맺으면서 팀 이름이 잠시 베이징 현대로 변경되었던 인연이 있다. 이 계약이 2006년에 끝나면서 팀 이름도 베이징 궈안으로 돌아왔다.
친선 매치(격년제 초청)와 임대 및 이적, 선수교환 프로그램, 유소년 친선 매치 및 교류 프로그램, 지역 내 유학생 초청 등 홍보 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하는 클럽 마케팅 교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2015년 리그 휴식기에 중국 현지에서 친선 매치가 예정 되어있었느나. 그전에 먼저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2015년 5월 19일 전주 홈에서 먼저 치른 1차전 경기에서는 레오나르도가 세트피스에서 올린 크로스를 김기희가 백헤딩으로 선제골을 넣고 먼저 앞서나갔으나 원정다득점 규칙에 따른 무실점 의식과 3, 4일 간격의 혹독한 경기일정에 지친 선수진들이 전체적으로 내려안아 수비를 하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한골을 허용하며 1대1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2015년 5월 26일 베이징 원정 2차전에서는 이재성의 기막힌 킬패스로 에두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경기내용은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공방전을 벌였으며 마지막에 결정적인 베이징 선수의 슛을 권순태 선수가 선방하며 1대0으로 승리, 8강 진출을 결정 지었다.
2019년에는 4시즌만에 아챔에서 다시 만난다.
또한 전북에서 뛰던 김민재가 이적하기도 했다.
17.3. 첼시 FC
2020년 1월 12일, '''2020 World in Jeonbuk'''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첼시 FC 와 만나서 업무 교류를 맺었다는 기사가 떳다.
17.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20년 1월 22일, 스페인 명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만나 상호 업무협력을 도모했고, 잉글랜드 첼시FC에 이어 이번엔 AT 마드리드와 교류를 추진, 프리메라리가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떳다.
18. 홈 경기장
19. 클럽하우스
20. 우승반지
- 2014년 우승 이후 제작한 K리그 최초의 우승반지 이다.
- 201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반지도 제작했으며 몽블랑시계와 함께 지급했다.
21. 사건사고
22. 마스코트
2021년 2월 18일, 전북의 새로운 마스코트 "나이티"와 "써치"가 공개되었다.
이전까지는 엠블럼에 그려진 봉황을 형상화한 "초니"와 "초아"가 마스코트였다.
23. 여담
-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부터 김도훈, 에드밀손, 마그노 등 A급 공격수들을 바탕으로 한 공격축구가 팀컬러였다. 하지만 순위는 중위권에서 맴돌던 지방 구단이었으나, 2005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해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 시리아의 알 카라마와의 경기 때 서포터즈 소수인원 4명이 응원하러 시리아 다마스커스까지 갔다.[50] 이 서포터들은 10여년 더 지난 지금도 당시의 경기장 분위기를 회상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고 한다. 당시 경기장에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가 참관 중이라 경호하는 인원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고..
- K리그 클래식의 맨체스터 시티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우승권 클럽으로 급부상한 이미지의 영향으로 보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전북 팬 입장이고, 객관적으로 승부조작이라는 중범죄 + 이와 별개로 실력 자체는 뛰어나 많은 우승을 차지한 클럽이라는 점에서 유벤투스, 페네르바흐체, 포르투 라고 보는 게 가장 합당할 것이다.
- 리그 최다 우승에 빛나는 강호지만 더블을 달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더블에 가장 가까웠던 시즌이 있었다면 리그 무패 우승과 아챔 우승에 도전했던 2016년이 있다. 그것도 서울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통한의 1패를 당하는 바람에 더블 꿈이 박살났다.[51] 하지만 2020년, 드디어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까지 동시에 이뤄내며 K리그에서는 일화 천마와 포항 스틸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더블을 달성한 팀이 되었다. 다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K리그 사상 최초이자 아시아 사상 최초의 트레블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 최강희 감독의 닥치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윙어들을 선호하는것으로 유명하다. 전북 현대 모터스/날개 매니아 참고
- 이철근 단장 曰 "우리 구단의 비전은 K리그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클럽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최강희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전북 프런트에서 선물로 준 녹-검 사선 줄무늬 넥타이를 자주 매고 다니고, 최강희 감독이 맸던 넥타이를 하사(?)받을 정도로 공인된 전북빠다.
- K리그 최초로 비디오 경기 분석팀을 창설했다. 이철근 전북단장은 "분석을 통해 팀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필요한 부분을 찾겠다"며 "K리그 최초로 시도되는 만큼 조금씩 발전해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K리그 최초로 3면 LED광고보드를 설치해 운영한다. 첨단 광고 기술의 스포츠용 LED 광고 시스템은 현재 5개 K리그 경기장에 도입돼 운용 중이다. 하지만, LED광고 시스템이 1면이 아닌 3개면에 설치하는 것은 K리그 팀 중 처음이다. 화려하며 역동적인 광고 연출이 가능한 3면 LED 광고 시스템은 이미 유럽 리그에서는 활성화된 스포츠 광고용으로 특수 제작됐다. 특히 해상도(16×16피치)가 국내 광고보드 중 가장 높은 167억 칼라를 구현하는 최신형으로 주간에도 선명하고 뛰어난 화질을 제공한다.
- 이동국이 K리그 클래식 4번째, 전북 구단 최초로 181경기만에 100호 골을 기록하는 선수가 되었다.
- 인도네시아에서는 전북을 싫어하는 편이다. K리그가 알 이티하드 노이로제가 있듯이 인도네시아도 전북과 같은 조가 되기를 꺼린다고 한다.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전북은 페르시푸라 자야푸라를 만나 원정에서 4:1로 승리를 거두고 홈에서 8:0승리를 거둬 총 12:1로 도륙을 내버렸다. 2011년 대회에서도 아레나 말랑을 만나 원정에서 4:0 홈에서 6:0 으로 대승을 거뒀다. 경기 이후 전북은 인도네시아팀들에게는 깡패팀으로 군림했고 인도네시아 축구팬 사이에서는 축구 얘기할 때에는 전북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홈에서 알 사드와의 승부차기, 2013년 FA컵 결승 홈에서 포항과의 승부차기, 2014년 FA컵 준결승 홈에서 성남과의 승부차기, 2019년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홈에서 상하이 상강과의 승부차기를 4연속으로 모두 패하며, 홈에서 연장전에 들어가면 승부를 내지 못하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지는 연장전 징크스에 전북 팬들이 고통 받고 있다.
- 2013 시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영입하고 있다. 그것도 인천의 핵심급 선수들만 골라가서 영입하고 있는데 2013 시즌에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영입하더니 2014 시즌에는 한교원, 김남일을 영입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제대로 주전 출전을 하던 선수는 정혁 뿐이라[52] 인천 팬으로서는 답답할 노릇. 2015 시즌에도 기어코 문상윤을 영입하여 인천 팬들은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문상윤 영입은 정혁, 신형민, 김남일이 한 번에 빠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미 영입이 필요했으므로 전북으로서도 필요한 영입이긴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선수들은 2016 시즌에는 정혁과 한교원을 제외하고 전부 팀을 떠났다. 그나마도 정혁은 입대 중이고 한교원은 후보라는 것이 아이러니. 그래도 인천에게 선수를 영입만 한 것은 아니라서 김인성, 박세직, 케빈 오리스 등 전북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인천에서 뛴 적도 있다.[53]
- 2015년 시즌을 앞두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한 전지훈련에서는 축구에 관심이 많은 두바이의 왕세자이며 차기 통치자인 라시드 빈 모하메드 알 막툼의 초대를 받아 5성급 호텔에 NAS 훈련장의 최신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며 VIP 대우를 받았다. NAS 훈련장은 AC밀란, 맨체스터 시티, 폐예노르트, 함부르크 등의 유럽명문 클럽들만 초청했지만 아시아 클럽으로서는 전북이 최초로 이 곳의 문을 열었다고 하며 특별히 사용을 허락했다고 한다. 훈련당시 축구전설 마라도나가 전북을 응원차 훈련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 2014년 3번째 우승을 기념하여 마치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해왔던 것처럼 우승반지를 제작했는데 K리그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반응 역시 호평일색이며 갖고 싶다는 팬심을 자극하고 있다. 뉴스 링크 2016년 1월에는 2015년 리그 2연패와 4번째 우승을 기념한 두 번째 우승반지가 제작되었다.
- 2015년 7월 26일 '풋볼데이터베이스' 에서 발표한 아시아 클럽랭킹에서 알 힐랄에 3점 뒤진 1604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뉴스 링크 풋볼데이터베이스 링크
- 2015년 연초부터 9월까지 구단의 아시아챔피언스 리그 활동의 홍보효과를 브랜드 전문분석업체가 추산한 결과 국내외를 통틀어 315억 원 규모으로 추산되었다. 같은 해 구단의 예산이 306.2억 대비 아챔출전 만으로 10억대의 흑자를 기록한 셈. 아챔 성적이 새삼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 2016년 11월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며 10년만에 다시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16년, 과거의 심판매수 사실이 드러나 승점을 삭감당하여 리그 우승을 놓치고 AFC에 의해 2017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까지 박탈당한 후 이에 불복하여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는 등, 그간 쌓아 온 명예를 무너뜨리고 팬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자초하고 말았다.
- 2017 시즌에는 FA컵 첫 경기 탈락으로 K리그 클래식에만 참여했으며 2017 FIFA U-20 월드컵으로 5월까지 옛 홈구장인 전주종합운동장에서 뛰었다. 2017년 10월 29일 홈경기에서 2위팀 제주 유나이티드를 3-0으로 이기며 2년 만에 K리그 클래식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 2018 시즌에는 32라운드 만에 우승을 확정지었는데, 2012년 K리그에 스플릿 제도가 도입된 이래 스플릿 라운드를 하기 전에 우승을 확정지은 건 최초이다.[54]
- 2019 시즌에는 시즌 마지막까지 울산 현대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다 결국 최종 라운드에서 짜릿한 역전 우승을 했다. 이로써 7회 우승으로 성남 FC와 K리그 공동 최다 우승팀이 됐다.
- 2020 시즌에는 전시즌과 마찬가지로 울산 현대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으나, 맞대결에서 전승하며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뒤이어 열린 FA컵 결승에서도 1차전에서 비겼지만 2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K리그 단독 최다 우승팀이 되었으며, 더블을 달성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도 기대해볼만 했지만, 여기선 오히려 울산이 더 선전하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 대한민국 5부 축구리그인 K5리그 울산권역의 강호이자 2020년 K5리그 챔피언십에도 출전한 울산 523 FC라는 팀의 앰블럼이 전북의 기존 앰블럼에서 글자만 바꾼것이라 여러 말들이 많았는데, 알고보니 전북 현대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모여 만든 팀이어서 그랬다고 한다.
24. 둘러보기
[1] 2017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개최를 위해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수공사 기간 중 잠시 홈으로 쓴 적이 있다.[2] 30,000석. '전주성'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경기장. 신 전주성과의 구분을 위해 원조 전주성으로도 부른다.[3] 42,477석. 현재 '전주성'으로 불리는 축구장. 원조 전주성과의 구분을 위해 신 전주성으로도 부른다.[4]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2020년 10월 14일 부로 회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정식 구단주가 되었다[5] 현 현대자동차 판매사업부장.[6]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도 겸임한다.[색상코드]
'''Green''' : '''C90 M30 Y95 K19 ''' & '''R0 G115 B63 '''
'''Yellow''' : '''C2 M9 Y99 K0 ''' & '''R255 G222 B0 '''
'''Blue''' : '''C100 M81 Y21 K6 ''' & '''R5 G70 B132 '''[7] 1998년까지 변화없이 색종이 유니폼으로 가다가 1999년부터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팀 컬러가 초록으로 굳어지면서 유니폼도 초록으로 변경되었다.[8]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과 아시안 컵 위너스컵이 통합되며 재편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거둔 K리그 클럽 최초 우승이다. 동아시아 클럽 최초 우승이기도 하다.[9] 피파에서는 shut up and attack 으로 번역.[10] 역대 최다. 2위는 성남 FC[11]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완산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전주시 남부지역의 일반구 명칭으로 남아 있다.[12] 사실 이런 식으로 신생 팀의 지명을 피해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의의 경우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에 안전하게 귀국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명을 받는다.[13] 전북지역을 대표하던 소주 회사로 '보배소주'를 생산했다. 그러나 전북 버팔로 운영을 지원하던 당시에도 회사 사정은 녹록치 않았고 결국 1995년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된다. 훗날 하이트진로에 인수 합병돼 현재는 없는 회사다. 참고로 아랫동네의 대표 소주 회사인 보해양조와는 다른 회사이다.[14] 이 과정에서 메인 스폰서인 제우 엑스터의 후원 금액이 당초 알려진 12억이 아닌 3억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15]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현대자동차와 ㈜현양 측에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을 주선한 것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된 정몽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현대家에서 위기에 빠진 전북을 건져낸 셈이다.[16] 김덕중, '잊혀진 K리그 제7 구단', 《스포츠 2.0》제91호(2008.2.18); 홍재의, <K리그 꿈의 구장> 제9, 10탄 '전주종합운동장'편.[17] 이 당시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의 K리그 구단은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 다이노스 2개 체제로 운영됐다. 지금이야 현대그룹의 규모가 쪼그라들었지만 '''왕회장이 살아있던 그 때는 축구단 2개에 돈을 펑펑 써대던 프로야구단과 농구판을 씹어먹던 팀을 동시에 운영하고도 남을 정도로 현대그룹의 사세가 매우 빵빵했던 시절'''이었던데다 현대家의 일원인 정몽준이 대한민국 축구계를 꽉 잡았던 시절이기에 2개의 축구단 운영이 가능했다. 여담으로 현대자동차가 전북 구단을 직접 운영하던 초기에도 울산 현대 유니폼에는 액센트 등 현대자동차 제품 로고가 삽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 현대의 운영권이 현대중공업으로 넘어간 1998년 후반기부터는 울산의 유니폼에서 더 이상 현대자동차의 제품 로고를 볼 수 없게 됐다.[18] 대한민국 프로축구팀 최초 출전[19] 대한민국 프로축구팀 최다 출전기록. 단 성적은 3위 포항, 4위 성남에 이어 세 번째이다.[20] 전년도 리그 2위로 출전 자격이 있었으나, 이후 2013년 심판매수건으로 인한 AFC의 추가징계로 출전권이 박탈되었다.[21] 창단 이후 처음으로 더블(2관왕)을 달성한 시즌이다.[22] 2000 서울은행 FA컵 축구대회 우승.[23] 2003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004 K-리그 수퍼컵 우승.[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발탁으로 전북 감독에서 사임한 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최종 예선까지 지휘하고 2013년 6월 다시 전북으로 복귀했다.[25] 2005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006 AFC 챔피언스 리그, 2009 K-리그, 2011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2017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8 KEB 하나은행 K리그1 우승.[26]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27] 2019 하나원큐 K리그1, 2020 하나원큐 K리그1, 2020 하나은행 FA CUP 우승.[28]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29] 피파에서는 shut up and attack 으로 번역.[30] 이흥실(수석코치) 감독대행, 파비우(체력코치) 감독대행[31] 2012년 5월 25일 수원전을 앞두고 발표한 필승의 캐치프라이즈[32] 2015년 7월 26일 명승부에 언론들이 붙인 별명이다.[33] 2020년 8월 15일 K리그 16라운드 전북이 수원 원정에서 3-1 승리하면서 31승 23무 30패로 역대 전적 우위를 가져갔다.[34] 2000년 7월 2일부터 2005년 FA컵까지 무려 5년여간 2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했다. 당시 전북이 2003년 리그 5위, 2004년 전기리그 2위 등 나름 중상위권에서 놀던 때인데도.[35] 2005-2010 VS 차범근 5승 6무 1패, 2010-2011 VS 윤성효 1승 2무, 2013- VS 서정원 5승 2무 2패(2015. 7. 26) , 전북 최강희 감독 대 수원전적 총 11승 10무 3패(2015. 7. 26)[36] 2015년 9월 12일 홈 경기를 앞두고 구단이 홍보자료에 내놓은 카피. 이 날 경기는 3-0 완승을 거둔다.[37] 13년 포항을 제외하고는 양팀이 2009년부터 리그 우승을 독식하고 있다.[38] FA컵 포항전, 아챔 알사드전에 이어 현재진행형 반드시 깨야할 징크스이다. 단 2017년 리그에서 우승하며 리그 준우승은 일단 극복.[39] 울산의 첫 스폰서는 자동차였다가 이후 중공업(구단주 정몽준)으로 바뀐다. 다이노스 시절에는 포니 정 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현 축구 협회 회장이 전북의 구단주를 맡기도 하였으나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를 장악하면서 정의선 구단주 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40] 다만 진정한 용호상박이라기 보단, 최강희나 김호곤에 비해 양팀 현직 감독들이 승부를 장악하는 능력이 떨어져 상대를 압도하고 일찍 우승경쟁을 선점하지 못해서 타의로 이루어진 경쟁에 가깝다. 덕분에 대다수의 양팀 팬들은 다른 팀 팬들이 뭐라고 하건 자팀 감독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상대팀 팬들을 위로(?)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41] 지역사회 광고협찬 차이는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포스코의 지원액은 포항과 전남 모두 똑같다.[42] 광주와 대전 모두 승격에 실패하여 19시즌은 전주성 기준 역대급으로 장거리 원정을 치르는 시즌이 될 전망이다.[43] 실제 다음 시즌에 임대가 연장되었다.[44] 포스텍 재학생으로 알려진 전북팬이 울산 원정석에서 포항을 응원하는 장면이 중계로 송출되었다. 포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이 팬은 헹가레를 받았으며 포항팬들이 우승을 축하한다며 '전북'을 연호했다고 전해진다. [45] 수원과 서울 없는 18시즌 아챔을 위해[46] 여기서 2승을 거둔 경기가 모두 퇴장을 받고 거둔 승리라 광저우를 이기려면 퇴장당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47] 여기에 김영권이적설이 불거졌을때도, 이적팀으로 거론된 것이 전북이었다. 다만 전북이 홍정호를 장쑤에서 임대해 오면서 없던일이 된 듯. [48] 원본은 자율공상축구탐구만화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올랭피크 리옹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계속 만나는 것 을 희화한 장면이다. 여담으로 이 만화의 작가 조석은 전북팬이라고 한다.[49] 1990년대 후반 전북 다이노스 시절에는 익산공설운동장에서 홈경기를 나눠 치른 적이 있다. 전남 드래곤즈가 순천 팔마경기장에서, 경남 FC가 함안공설운동장에서, 강원 FC가 원주공설운동장과 평창알펜시아경기장에서 홈경기를 분산해서 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북, 전남, 경남, 강원 등이 도시연고팀이 아닌 광역연고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북의 홈경기는 모두 전주에서만 열려도 전북 현대를 향한 전북도민들의 성원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나 홈경기장이 고속도로 나들목은 물론 군산시, 익산시, 완주군, 김제시 등 인접 행정구역을 잇는 도로망과 잘 연결돼있기 때문에 전주 바깥에 사는 도민들도 홈경기를 잘 찾는 편이다. 물론 전주 이외 지역을 향한 전북 구단의 지역 친화 마케팅도 한몫을 했다.[50] 시리아 현지 한국 교민들도 이들의 리딩에맞춰 응원했다.[51] 물론 이 시즌에 리그 우승을 못한 것은 심판 매수 사건으로 승점을 날려먹은 탓도 있다.[52] 정인환은 2013 시즌 초반에는 주전이었는데,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돌아온 뒤 윌킨슨이 주전으로 발돋움하면서 윌킨슨과 김기희의 백업으로 내려갔고, 이규로는 인천 시절에 비해 공격수비 모두 안 되는 모습을 보여서 2012 시즌 주전 라이트백이던 전광환과 로테이션을 번갈아 가다가, 최철순 전역 후에는 그에게 완전히 밀려버렸다. 김남일은 시즌 후반에는 로테이션급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즌 초에는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서 거의 나오지 못 했다. 한교원은 2014 시즌 기복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꽤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2015 시즌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수비수들에게 읽히면서 후보로 밀려났다.[53] 이 중 김인성은 2015 시즌 전북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친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케빈은 그 골을 어시스트했다.[54] K리그는 총 38라운드를 거치는데 33라운드까지는 정규라운드이고, 34라운드부터 38라운드까지 총 5라운드를 스플릿 라운드로 경기를 치른다.
'''Green''' : '''C90 M30 Y95 K19 ''' & '''R0 G115 B63 '''
'''Yellow''' : '''C2 M9 Y99 K0 ''' & '''R255 G222 B0 '''
'''Blue''' : '''C100 M81 Y21 K6 ''' & '''R5 G70 B132 '''[7] 1998년까지 변화없이 색종이 유니폼으로 가다가 1999년부터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팀 컬러가 초록으로 굳어지면서 유니폼도 초록으로 변경되었다.[8]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과 아시안 컵 위너스컵이 통합되며 재편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거둔 K리그 클럽 최초 우승이다. 동아시아 클럽 최초 우승이기도 하다.[9] 피파에서는 shut up and attack 으로 번역.[10] 역대 최다. 2위는 성남 FC[11]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완산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전주시 남부지역의 일반구 명칭으로 남아 있다.[12] 사실 이런 식으로 신생 팀의 지명을 피해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의의 경우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에 안전하게 귀국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명을 받는다.[13] 전북지역을 대표하던 소주 회사로 '보배소주'를 생산했다. 그러나 전북 버팔로 운영을 지원하던 당시에도 회사 사정은 녹록치 않았고 결국 1995년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된다. 훗날 하이트진로에 인수 합병돼 현재는 없는 회사다. 참고로 아랫동네의 대표 소주 회사인 보해양조와는 다른 회사이다.[14] 이 과정에서 메인 스폰서인 제우 엑스터의 후원 금액이 당초 알려진 12억이 아닌 3억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15]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현대자동차와 ㈜현양 측에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을 주선한 것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된 정몽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현대家에서 위기에 빠진 전북을 건져낸 셈이다.[16] 김덕중, '잊혀진 K리그 제7 구단', 《스포츠 2.0》제91호(2008.2.18); 홍재의, <K리그 꿈의 구장> 제9, 10탄 '전주종합운동장'편.[17] 이 당시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의 K리그 구단은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 다이노스 2개 체제로 운영됐다. 지금이야 현대그룹의 규모가 쪼그라들었지만 '''왕회장이 살아있던 그 때는 축구단 2개에 돈을 펑펑 써대던 프로야구단과 농구판을 씹어먹던 팀을 동시에 운영하고도 남을 정도로 현대그룹의 사세가 매우 빵빵했던 시절'''이었던데다 현대家의 일원인 정몽준이 대한민국 축구계를 꽉 잡았던 시절이기에 2개의 축구단 운영이 가능했다. 여담으로 현대자동차가 전북 구단을 직접 운영하던 초기에도 울산 현대 유니폼에는 액센트 등 현대자동차 제품 로고가 삽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 현대의 운영권이 현대중공업으로 넘어간 1998년 후반기부터는 울산의 유니폼에서 더 이상 현대자동차의 제품 로고를 볼 수 없게 됐다.[18] 대한민국 프로축구팀 최초 출전[19] 대한민국 프로축구팀 최다 출전기록. 단 성적은 3위 포항, 4위 성남에 이어 세 번째이다.[20] 전년도 리그 2위로 출전 자격이 있었으나, 이후 2013년 심판매수건으로 인한 AFC의 추가징계로 출전권이 박탈되었다.[21] 창단 이후 처음으로 더블(2관왕)을 달성한 시즌이다.[22] 2000 서울은행 FA컵 축구대회 우승.[23] 2003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004 K-리그 수퍼컵 우승.[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발탁으로 전북 감독에서 사임한 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최종 예선까지 지휘하고 2013년 6월 다시 전북으로 복귀했다.[25] 2005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006 AFC 챔피언스 리그, 2009 K-리그, 2011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2017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8 KEB 하나은행 K리그1 우승.[26]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27] 2019 하나원큐 K리그1, 2020 하나원큐 K리그1, 2020 하나은행 FA CUP 우승.[28]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29] 피파에서는 shut up and attack 으로 번역.[30] 이흥실(수석코치) 감독대행, 파비우(체력코치) 감독대행[31] 2012년 5월 25일 수원전을 앞두고 발표한 필승의 캐치프라이즈[32] 2015년 7월 26일 명승부에 언론들이 붙인 별명이다.[33] 2020년 8월 15일 K리그 16라운드 전북이 수원 원정에서 3-1 승리하면서 31승 23무 30패로 역대 전적 우위를 가져갔다.[34] 2000년 7월 2일부터 2005년 FA컵까지 무려 5년여간 2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했다. 당시 전북이 2003년 리그 5위, 2004년 전기리그 2위 등 나름 중상위권에서 놀던 때인데도.[35] 2005-2010 VS 차범근 5승 6무 1패, 2010-2011 VS 윤성효 1승 2무, 2013- VS 서정원 5승 2무 2패(2015. 7. 26) , 전북 최강희 감독 대 수원전적 총 11승 10무 3패(2015. 7. 26)[36] 2015년 9월 12일 홈 경기를 앞두고 구단이 홍보자료에 내놓은 카피. 이 날 경기는 3-0 완승을 거둔다.[37] 13년 포항을 제외하고는 양팀이 2009년부터 리그 우승을 독식하고 있다.[38] FA컵 포항전, 아챔 알사드전에 이어 현재진행형 반드시 깨야할 징크스이다. 단 2017년 리그에서 우승하며 리그 준우승은 일단 극복.[39] 울산의 첫 스폰서는 자동차였다가 이후 중공업(구단주 정몽준)으로 바뀐다. 다이노스 시절에는 포니 정 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현 축구 협회 회장이 전북의 구단주를 맡기도 하였으나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를 장악하면서 정의선 구단주 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40] 다만 진정한 용호상박이라기 보단, 최강희나 김호곤에 비해 양팀 현직 감독들이 승부를 장악하는 능력이 떨어져 상대를 압도하고 일찍 우승경쟁을 선점하지 못해서 타의로 이루어진 경쟁에 가깝다. 덕분에 대다수의 양팀 팬들은 다른 팀 팬들이 뭐라고 하건 자팀 감독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상대팀 팬들을 위로(?)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41] 지역사회 광고협찬 차이는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포스코의 지원액은 포항과 전남 모두 똑같다.[42] 광주와 대전 모두 승격에 실패하여 19시즌은 전주성 기준 역대급으로 장거리 원정을 치르는 시즌이 될 전망이다.[43] 실제 다음 시즌에 임대가 연장되었다.[44] 포스텍 재학생으로 알려진 전북팬이 울산 원정석에서 포항을 응원하는 장면이 중계로 송출되었다. 포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이 팬은 헹가레를 받았으며 포항팬들이 우승을 축하한다며 '전북'을 연호했다고 전해진다. [45] 수원과 서울 없는 18시즌 아챔을 위해[46] 여기서 2승을 거둔 경기가 모두 퇴장을 받고 거둔 승리라 광저우를 이기려면 퇴장당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47] 여기에 김영권이적설이 불거졌을때도, 이적팀으로 거론된 것이 전북이었다. 다만 전북이 홍정호를 장쑤에서 임대해 오면서 없던일이 된 듯. [48] 원본은 자율공상축구탐구만화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올랭피크 리옹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계속 만나는 것 을 희화한 장면이다. 여담으로 이 만화의 작가 조석은 전북팬이라고 한다.[49] 1990년대 후반 전북 다이노스 시절에는 익산공설운동장에서 홈경기를 나눠 치른 적이 있다. 전남 드래곤즈가 순천 팔마경기장에서, 경남 FC가 함안공설운동장에서, 강원 FC가 원주공설운동장과 평창알펜시아경기장에서 홈경기를 분산해서 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북, 전남, 경남, 강원 등이 도시연고팀이 아닌 광역연고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북의 홈경기는 모두 전주에서만 열려도 전북 현대를 향한 전북도민들의 성원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나 홈경기장이 고속도로 나들목은 물론 군산시, 익산시, 완주군, 김제시 등 인접 행정구역을 잇는 도로망과 잘 연결돼있기 때문에 전주 바깥에 사는 도민들도 홈경기를 잘 찾는 편이다. 물론 전주 이외 지역을 향한 전북 구단의 지역 친화 마케팅도 한몫을 했다.[50] 시리아 현지 한국 교민들도 이들의 리딩에맞춰 응원했다.[51] 물론 이 시즌에 리그 우승을 못한 것은 심판 매수 사건으로 승점을 날려먹은 탓도 있다.[52] 정인환은 2013 시즌 초반에는 주전이었는데,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돌아온 뒤 윌킨슨이 주전으로 발돋움하면서 윌킨슨과 김기희의 백업으로 내려갔고, 이규로는 인천 시절에 비해 공격수비 모두 안 되는 모습을 보여서 2012 시즌 주전 라이트백이던 전광환과 로테이션을 번갈아 가다가, 최철순 전역 후에는 그에게 완전히 밀려버렸다. 김남일은 시즌 후반에는 로테이션급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즌 초에는 부진에 부상까지 겹쳐서 거의 나오지 못 했다. 한교원은 2014 시즌 기복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꽤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2015 시즌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수비수들에게 읽히면서 후보로 밀려났다.[53] 이 중 김인성은 2015 시즌 전북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친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케빈은 그 골을 어시스트했다.[54] K리그는 총 38라운드를 거치는데 33라운드까지는 정규라운드이고, 34라운드부터 38라운드까지 총 5라운드를 스플릿 라운드로 경기를 치른다.